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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돈’과 ‘자리’로 유혹하는 졸속 행정통합,그 방식에 반대한다.

실질적인 재정·입법권 이양 없는 ‘껍데기 통합’ 반대한다

 

【우리일보 서울=강수선 기자】지난 1월 16일 ,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통해 광역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재정지원, 위상강화, 공공기관 이전, 산업활성화 등 4대 분야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최대 5조 원, 4년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부단체장 직급의 차관급 격상 등이 골자이다.

 

경실련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체계 개편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6월 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 졸속으로 추진되는 현재의 방식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알맹이 없는 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돈과 자리로 지방을 현혹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실질적인 권한 이양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먼저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첫째, 선거를 목전에 둔 졸속 추진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6월 3일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물리적으로 통합을 완수하기 불가능한 일정임에도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원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통합 이슈를 선거용 호재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가 백년지대계인 행정구역 개편을 선거판의 흥행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장은 “20조 원 지원”이라는 실체 없는 허상으로 주민을 현혹하지 말고, 통합의 구체적인 득실을 투명하게 공개한 뒤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절차적,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실질적 분권 없는 행정통합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정부는 (가칭) 행정통합 교부세 등을 신설해 4년간 최대 20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적으로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국가 재정 계획은 연말 예산 국회나 중장기 계획에서 치열하게 다뤄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1월에, 기획재정부의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조차 확정되지 않은 채 ‘최대 20조 원’이라는 숫자를 던진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려는 의도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이는 선거용 ‘공수표’이거나, 실현된다 해도 중앙정부가 언제든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용돈’에 불과하다. 진정한 재정분권은 시혜성 교부금이 아니라, 현재 7.5대 2.5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대 4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조정하여 지방이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부단체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1급 자리를 늘리는 것은 공무원들의 자리 보전일 뿐 주민의 삶과는 무관하다. 주민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높은 직급의 공무원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복지·환경 정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치입법권이다. 중앙부처 시행령의 간섭을 배제하고 법률의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조례를 제정할 권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셋째, 공공기관 이전을 볼모로 한 “갈라치기”를 즉각 중단하라.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통합 지역을 우선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오히려 행정통합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에 가깝게 들린다. 공공기관 이전은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낙후도와 국토 균형발전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추진되어야 할 국가적 책무다. 이를 통합의 대가로 내거는 것은 통합하지 않는 지자체는 소외시키겠다는 비열한 갈라치기이며,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넷째, 기업 유치를 핑계로 한 규제 프리는 난개발과 투기판을 만들 우려가 있다. 정부는 절차 간소화와 세금 감면이라는 손쉬운 카드로 기업을 유혹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지역의 환경과 안전을 팔아넘기는 행위이며, 무분별한 지방세 감면으로 지방 재정의 기초체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자충수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가 아닌, 건설업 배 불리기식 개발 특혜로 변질될 이 정책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정부는 돈과 자리로 지방을 현혹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알맹이(입법권·재정권) 없는 껍데기 통합은 제2, 제3의 실패 사례만 낳을 뿐이다. 경실련은 진정한 지방분권 없는 관 주도 행정통합을 단호히 반대하며, 정부와 정치권이 실질적인 권한 이양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