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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고흥의 맛 기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자덕석말이 피자

 

고흥의 지맥을 타고 서 있는 산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않다. 해창만 너른 들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마복산과 거대한 공룡 한마리가 진격하는 모습의 팔영산의 기세 그리고 아기자기한 산들이 기기묘묘하게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에 고흥의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진다.

팔영산 자락 흐드러지게 피어난 벗꽃아래서 봄을 일구는 촌로의 모습은 꿈에 그리던 도원경의 모습으로 다가와 나도 모르게 차를 멈추고 셔터를 눌러댔다. 찰라같은 일순간의 마주침이었지만 내가 외우고 있는 성산별곡의 시조 한수가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산속에서 달력이 없어 사계절을 모르지만 눈 아래 헤친 경치가 철을 따라 절로 생겨나니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신선이 사는 세상이로다' 참으로 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두가 풍족한 곳이다.

점암면을 지나고 공자를 모신 풍양면 상림마을을 경유하여 녹동항에 도착했다. 녹동항은 먹거리 천국이다. 갓 바다에서 건져올린 물고기들은 여전히 팔딱거리고 빛좋은 덕장에서 꾸덕하게 말려지는 생선들은 자칭 미식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이곳에는 언젠가부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좋은 곳에 자연스럽게 장어탕거리가 생겨났다. 같은 장어를 가지고도 식당마다 다르게 장어탕을 내놓는데 외지인들이 녹동항에 오면 반드시 맛보고 가는 코스가 되었다. 우리가 오늘 찾아갈 곳은 분주한 큰길에 가려진 골목길 한귀퉁이에 있는 소담식당이다.
(고흥군 도양읍 명동길 6-23. 061 842 0999)

항구의 뒷골목은 나름의 운치가 있다. 겉에서 보여지는 정갈함대신 뒷골목은 삶의 현장을 그대로 드러낸다. 길거리에 놓인 고기상자를 의자삼아 노가리 안주에 캔맥주 하나를 마시는 어부의 생생한 몸짓도 볼 수 있고 집집마다 식당마다 화분이 될만한 용기에 꽃들을 심어서 봄을 즐기고, 설사 그것이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일지언정 뽑지않고 봄을 살게 해주는 소박하고 순정어린 마음도 만나볼 수 있다.

일부러 가보지 않으면 만나보기 힘든 뒷골목의 식당들은 맛과 양,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한자리에서 오랜세월을 지켜온 소담식당의 당당한 이유가 있을터이다. 햇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는 정갈하고 일하시는 분들은 상냥하고 친절하다.

미리 예약한 병어조림이 나오기 전에 생선구이와 숭어회무침으로 한상이 가득 차려졌다. 여느 한정식처럼 가짓수를 맞추기 위해 거나하게 차려지지 않고 하나같이 충실하고 맛있게 내놓아 먹는 개미(즐거움)가 있다.

고흥에 발을 들일 때부터 '서대회'를 외치던 친구들은 숭어회무침에다 비벼놓은 밥 한 그릇을 먹더니 서대회 얘기가 쏙 들어가버렸다. 봄철 통영에서는 도다리 쑥국을 먹어야 한다면 고흥에서는 기름지고 찰진맛의 보리숭어회를 먹어야 한다. 꼬들꼬들하게 잘 말린 생선구이는 젓가락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버리고 손으로 찢어 동물이었던 태초의 본성을 깨우게 하여 예의염치를 잊게한다.

이윽고 자박자박하게 끓여낸 병어조림이 상위에 올랐다. 빨간색이 매울 것 같았지만 기우였다. 어른 양손바닥 크기의 도톰한 병어를 갈라 흰속살을 양념에 배어들게 한 후에 흰 쌀밥에 올려먹으면 여행의 노곤함이 일시에 가신다. 병어의 학명은 버터피쉬다. 비늘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작아서 비린내가 안 나는 생선이다.

입 안에 넣는 순간 녹아든다는 표현외에는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성질이 온순한데다 입 안에 걸리는 가시마져 별로 없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생선이다. 양념에 잘 조려진 감자 한 알을 먹는 맛은 또 어떻게 표현하랴. 이맘때 햇감자는 어떻게 해서 먹어도 맛있지만 생선조림에 넣어서 먹는 햇감자는 맛의 진수를 보여준다. 남도음식을 입에 침이마르도록 칭송하다보면 어느새 양념이 졸여진다. 양념과 병어의 단백함이 잘 스며든 석박지처럼 큼직하게 썰어놓은 무 한토막을 베어물면 이 또한 그자체로 요리다. 

 

봄기운 물씬한 날씨에 미각마져 만족스러우니 부러울 것이 없다. 들어갈 때, 배고프다며 칭얼대던 친구들이 식당을 나올 때는 배를 두드리며 다이어트는 물건너갔다고 하소연을 한다. 아쉽지만 고흥여행은 여기에서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불편하다. 고흥은 우리가 모르는 보물이 하나있다. 고흥에서 직접재배한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다.


 

시간에 쫒겨 고흥산 커피콩으로 내린 커피맛을 못보고 왔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고흥만남의 광장에 있는 유자 앤 피자에 들러 고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유자덕석말이피자를 맛보게 해주겠노라고 했더니 다들 더 이상 들어갈 배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난색을 표한다. (전남 고흥군 동강면 고흥로 4797)

반 강제적으로 유자덕석말이 피자와 커피를 주문했다. 유자덕석말이 피자는 각종 채소와 고기를 볶은 다음에 통밀 또띠아에 말아서 나오는 것으로 고흥을 대표하는 상품중에 하나다. 조금전에 소담식당에서 거나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온데다 평소에도 피자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피자가 쉽게 입에 들어갈리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딱 한 입만 맛보라고 권했다. "이거 괜찮네. 맛있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쭉늘어진 치즈에다 유자 퓨레의 상큼한 맛이 더해진 유자덕석말이 피자는 삼일 밤낮을 차려놓았다는 황제의 만한전석을 먹고 온 사람도 틀림없이 피자에서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안다.

아내도 동생도 조카도 다 그렇게 배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유자피자 맛을 보고난 후에 유자피자를 극찬하고 맛 전도사가 되었다. 서울가면 또 생각날 것 같아"이 말이 정답이다. 고흥에 가시거든 꼭 유자덕석말이 피자맛을 보고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