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기자]인천의 현대사 - 인하대학교, 설립자 이승만 대통령의 설립 정신‘민족교육’ 함양 승화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1875~1965)의 ‘민족교육’함양이라는 설립 정신이 잃지 않고, 국내에서 ‘인하대학교(仁荷大學校)’로 승화됐다.
인하대학교의 교명 ‘인하(仁荷)’는 인천(仁川)과 미국 하와이(荷 口+圭 伊)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교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하대학교는 이역만리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 하와이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사진 설명: 1954년 10월 개교식에 참석한 설립자 이승만 대통령(왼쪽 세 번째)이 학교 시설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의 와중이던 1952년 미국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학기술자 양성을 위해 구상에 따라 인하대학교가 출범하게 됐다.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원으로는 하와이 교포의 2세 교육을 위해 당시 이승만 박사가 설립 운영했던 한인기독학원(Korea Christian Institute)을 1950년 10월 처분한 대금(미화 13만8500달러)과, 하와이 교포들의 정성어린 성금, 그리고 국내 유지의 성금(2774만환) 및 국고 보조(6000만환) 등을 기금으로 하고, 인천시로부터 시유지 약 41만3000㎡(12만5천여 평. 시가 약 1713만환)를 기증받아 1954년 2월 ‘재단법인 인하학원’의 설립을 마쳤다.
그해 4월 24일 인하공과대학으로 역사적인 개교에 나섰다. 미래 한국의 공업기반이 될 기계.금속.조선.화학.광산.전기 등 6개 공학과를 두어 각각 30명씩 180명을 모집해 1954년 4월 24일 입학식을 개최함으로써 인하공과대학을 출범시켰다.
개교에 앞서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4일에 발표한 ‘인하대학의 설립에 관하여’담화문 내용을 통해 “인하대학은 인천과 하와이 사이에 한국이민선이 처음으로 인천에서 하와이에 간 50년 기념을 목적하고, 대학의 주지는 공과대학을 만들어서 마치 미국의 MIT와 같은 미국에 제일 유명한 공과대학을 의미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승만 대통령의 설립 정신에 따라 인하대학교가 대한민국의 공업 입국의 초석이 될 지도적 영재 양성을 이념으로 해 인천시 남구 용현동과 학익동에 명문 민족사학으로 자리매김한 지 어언 60여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