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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 백령도 나드리 ... 효녀 심청을 만나!

장애인 문화체험단, 1박2일 백령도의 대자연을 만나는 특별한 체험
콩돌해변의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마냥 신기하기만..."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

 

【우리일보 문소라 기자】 | "처음엔 배를 오래 탄다고 해서 멀미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와 보니 파도가 잔잔해 멀미도 없고, 음식도 맛있고, 공기도 좋고, 특히 심청각도 가보고 콩돌해변의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부드러운 촉감이 너무 좋았어요."

 

미디어문화협동조합이 주관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 후원으로 인천시장애인문화협회와 한국장애인협회 인천지회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40여 명이 29~30일 이틀간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다녀온 장애인 문화체험 투어 행사에 나섰다.  특히 이번 체험단 행사에는 2산 난 안내견'너랑'이도 함께해 아빠의 길라잡이가 돼  줘 눈길을 끌었다.  

 

시각장애인 오씨는 시각장애인으로 앞을 볼 수 없지만 언제나 그리던 백령도를 한 번쯤은 갔다오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이번 문화체험단 모집 소식을 듣고 선뜻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체장애가 있는 한 참가자는 시각장애인 부인과 함께 왔다. 이처럼 체험단원 대부분이 부부나 활동보조인이 동행했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백령도 등 서해5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날씨와 파도, 안개 등 여러 기상 조건이 맞아야 한다. 자칫하면 모든 행사를 준비해 놨다가 기상악화로 연기되는 경우도 많다. 그 만큼 행사 주최 측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바다날씨의 속내는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 체험단이 떠나는 29일은 날씨가 최상이었다. 백령도에 도착하니 공기부터 달랐다. 육지 날씨는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더웠지만, 이곳은 청명한 가을처럼 선선하고 쾌적했다. 시각 장애인들은 코를 통해 가슴 속으로 깊이 흘러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원없이 들이켰다. 오길 잘했다는 감탄사가 연발됐다. 

 

도착하자마자 시장기를 끄기 위해 백령도 냉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사곶냉면집에 들렀다. 유명 연예인도 찾았다는 이곳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과거에는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해 지역 주민이 아니면 찾지 못할 정도로 숨겨진 맛집이다. 지금은 백령면옥이라고 쓴 자그마한 간판 하나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소뼈 등을 우려내 만든 육수에 메밀향이 가득한 면발... 여기에 백령도 특산품인 까나리 액젓을 몇 방울 튕기면 시원 칼칼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더해주는 사곶냉면 고유의 맛이 완성된다.

 

냉면에 수육까지 곁들인 푸짐한 식사였지만, 일부 체험단원들은 면사리가 부족하다며 연신 추가 주문을 하기도 했다. 먹고 나서도 박하사탕 처럼 상쾌한 뒷 맛의 여운이 잊혀지지 않는 백령도의 추억처럼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았다.


심청각 앞에 세워진 심청상에서 참가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안영우 기자


이어진 첫 번째 행선지는 효녀 심청의 전설이 서려 있는 심청각. 시각장애인들에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전 소설 속 주인공 심청은 꼭 만나 보고 싶었던 대상이었다. 백령도에 있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너무 멀어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기회를 얻어 오게 됐다. 

 

백령면 북산에  있는 심청각에 오르니 북녘 장산곶과 인당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지대가 높아 군사기지로 활용하다가 이전했고, 이 터에 옹진군에서 심청상을 포함한 심청각을 세웠다.

 

소설 속 심봉사와 심청이가 상봉하는 장면이 꿈만 같았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먼 뱃길을 따라 와 심청을 만나는 것도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어느 시각 장애인은 "심청각에 와 보니 내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다"며 우스게 소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심청각을 나온 체험단은 용트림바위와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는 위령탑을 참배한 뒤 유람선을 타고 절경 중의 절경, 수억 년의 세월이 빚은 두무진을 1시간 가량 감상했다. 시각장애인들은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유람선 선장의 구성진 목소리로 풀어내는 해설을 들으며 각자가 상상속의 두무진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두무진 유람을 끝낸 체험단은 놀래미, 광어, 전복, 해삼, 꽃게 등 백령도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산물에 소주가 곁들여진 저녁을 먹고 숙소로 왔다.


새벽 일찍부터 움직인 체험단은 피곤할만도 할텐데, 밤이 깊을수록 오히려 더 쌩쌩해졌다. 장애인 문화체험단을 환영하고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마련된 음악회를 보고픈 설렘 때문이었다.

 

이헌, 장동일, 윤영민 등 국제적 명성의 성악가와 메조소프라노가 등장했다. 이들의 깊은 호흡에서 끌어 올리는 울림과 감미로움이 마음으로 전달됐다. 클래식과 대중가요가 교차되어 흘러 나오다 보니 지루할 틈도 없었다. 이 지역 출신 가수도 나와 흥을 돋구었고 장애인들도 저마다의 춤사위를 더해 그야말로 금새 감동의 물결이 이어졌다. 대미를 장식한 김용호 상임지휘자의 바이올린 연주에 체험단과 지역 주민 모두가 하나가 됐다.

 

시각장애인 유정선씨는 "가는 곳 마다 좋은 경험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들을 환영하는 저녁 음악회가 너무 좋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며 "방문객들과 주민들을 위한 이번 음악회가 더 많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메밀이 듬뿍 들어간 면발에 백령도 자연산 강굴을 넣어 끓여 낸 푸짐한 메밀칼국수로 속을 달랜 체험단은 사자바위를 거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곶해변과 콩돌해안을 둘러봤다. 도중에 서해 최북단 백령도라고 새겨진 표지석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특히 바람에 실려왔다 파도에 떠내려 가며 내는 작은 콩돌의 ‘사그락거리는’ 합창소리를 들으며 이색적 바닷가 체험에 마냥 신기해 했다. 콩돌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려 양말을 벗고 맨발로 해변가를 걷는 장애인들에게 콩돌해변은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거리를 제공해 주기에 충분했다.

 

백령도 장닭에 삼을 넣고 푹 고은 백숙으로 점심을 먹은 체험단은 1박2일 간의 짧지만 인상 깊었던 여정을 뒤로 하고 용기포항에서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체험단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행사를 주관한 미디어문화협동조합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라 바다나 섬으로 가는 것은 힘만 들고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장애인들의 편견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난생 처음 가보는 백령도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이번 체험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행사를 주최한 인천시장애인문화협회 박용월 회장은 "시각장애인들이 서해최북단 백령도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미디어문화협동조합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지역의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후원으로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