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일보 김지윤 기자】 부산 교육이 ‘참여’와 ‘현장’으로 방향키를 확 꺾었다. 학생이 직접 만드는 60초 영상 공모부터 초등 저학년 대상 인공지능(AI) 체험, 공약을 시민이 감시·평가하는 구조, 그리고 전통연희와 비보잉을 엮은 창작공연과 학교 간 합동 예술축제까지—교육청의 각 부서와 산하기관, 교육지원청이 맞물리며 가을 학사 일정을 꽉 채웠다. 교육의 중심을 행정에서 교실과 무대로 옮기는 시도다.
먼저, 학생이 주인공인 ‘부산학생 쇼츠(Shorts) 영상 공모전’이 스타트를 끊는다. 부산의 초·중·고·특수학교 학생 누구나 개인 또는 5인 이하 팀으로 참여할 수 있고, 주제는 두 갈래다. 하나는 학교를 소개·자랑하는 ‘all about 우리 학교’, 다른 하나는 부산교육의 긍정적 변화와 감동을 담는 ‘부산교육 좋아요! 믿어요! 꿈꿔요!’다. 1분 이내 세로형 영상으로 승부를 보면 된다. 마감은 11월 7일 오후 5시. 대상 1팀에는 교육감상과 50만원 상당 상품, 최우수상 2팀에는 교육감상과 30만원 상당 상품, 우수상 3팀에는 10만원 상당 상품이 돌아간다. 수상작은 교육청 공식 채널의 홍보콘텐츠로 재탄생한다. “학생의 시선으로 학교와 교육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단순 공모를 넘어 ‘학교 미디어 리터러시’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김석준 교육감은 “학생들의 창의적 표현이 부산교육의 밝은 얼굴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두 번째 축은 AI 체험이다. 초등 1~3학년 400여 명을 대상으로 9~11월, 토요일마다 11주에 걸친 ‘AI 활용 늘봄 체험프로그램’이 명원초를 비롯한 13개 학교에서 열린다. 커리큘럼은 ‘AI큐브로 만나는 AI 세상’, ‘카미봇과 함께하는 AI 코딩 탐험’, ‘나의 프롬프트가 동화책으로!’ 등 세 갈래. 기술을 만져보고,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창작까지 이어가도록 설계했다. AI를 ‘보는 기술’이 아니라 ‘쓰는 언어’로 익혀, 생활 속 문제 해결과 표현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다. 디지털 기초 소양과 리터러시 격차 해소라는 정책 목표도 분명하다. ‘즐겁게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역량을 키우는’ 토요 체험 구조는 돌봄과 배움의 경계를 잇는 부산형 모델로도 주목된다.
정책의 실효성은 시민이 묻는다. 교육청은 학부모·시민·교직원 32명으로 ‘공약이행평가단’을 꾸렸다. 지난 8월 공개모집을 거쳐 구성된 평가단은 제19대 교육감 공약의 실천계획과 이행현황을 심의한다. 첫 회의에서는 ▲맞춤형 교육(‘꿈과 학력’을 동시에) ▲부산형 교육복지 ▲AI로 여는 미래(‘아이(AI) 좋은 부산교육’) ▲K-민주시민교육 ▲자부심 있는 교직사회 ▲지역 상생협력 등 6개 영역, 21개 과제, 73개 공약 사업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예산·일정·현장 애로를 함께 들여다보며 “가능한 공약, 계속되는 공약”을 가려내는 구조다. 정책을 발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민 검증’을 제도화한 점이 눈에 띈다. 김 교육감은 “투명성과 실현가능성을 높여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부산교육을 만들겠다”고 했다.
교육이 교실을 넘어 무대와 만나면, 배움은 감동으로 증폭된다. 학생예술문화회관이 17~19일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전통문화 공연 ‘조선통신사 OK’가 그 지점에 서 있다. 3일간 6회, 초·중·고 4,100여 명의 관객을 맞는 대형 기획이다. 부산예술단과 협업한 창작공연은 ‘조선통신사 기예부 오디션’이라는 현대적 장치로 전통 연희에 비보잉을 끼워 넣었다. 미디어 대북 퍼포먼스—연희극—살판·버나놀이·마상재—부채춤·판굿·채상놀음·부포놀이로 이어지는 구성은 전통과 스트리트, 장단과 비트가 교차하는 ‘융합’ 그 자체다. 지역 전문예술단체(극단 도깨비, 태극취타대, 타악그룹 고리 등)가 대거 합류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학생들은 관람을 넘어 체험 프로그램까지 연계해 전통의 동시대적 의미를 ‘몸으로’ 배운다.
현장은 온기로 굴러간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직원 마음살피기 ‘쓰담쓰담’ 활동으로 조직문화의 체온을 높였다. 특이 민원·격무로 지친 직원에게 부서장이 자필 메시지와 비타민 음료를 건네는 소박한 실천이지만, 반응은 뜨겁다. “힘든 마음을 알아줘서 큰 위로가 됐다”는 직원의 말처럼, 공공기관의 성과는 제도만큼 ‘사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같은 주간, 해운대교육지원청은 수영구희망교육지구 ‘함박웃음 예술축제’를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연다. 관내 초·중 6개교, 220명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광남초 난타로 문을 열고, 광안초 합창이 바통을 잇는다. 광안중·부산수영중·한바다중의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채우고, 동아중은 가야금과 서양 오케스트라를 엮은 퓨전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학교 간 공연을 서로의 ‘수업’으로 삼아 예술적 감수성을 나누는 자리다. 김순량 교육장은 “서로의 성과를 격려하며 훌륭한 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하는 데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일련의 프로그램은 메시지가 일관된다. 학생은 관객이 아니라 창작자이자 발표자이며, 교사는 기획자이자 촉진자다. 행정은 뒤에서 판을 깔고, 시민은 밖에서 성과를 점검한다. 영상은 학교의 일상을 기록하고, AI는 배움을 확장하며, 전통예술은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그 흐름이 올해 가을 부산 교육현장 전반을 관통한다. 교육청은 공모전과 체험, 평가, 공연, 축제를 각각의 이벤트로 소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연결의 서사’로 묶어 세운다—참여가 축적되면 문화가 되고, 문화가 굳어지면 경쟁력이 된다.
결국, 부산 교육의 성패는 ‘현장’에서 판가름난다. 학생의 60초가 교실을 바꾸고, 토요 3시간이 학습의 습관을 바꾸고, 시민의 32표가 정책의 신뢰를 바꾼다. 전통의 장단과 비보잉의 박자가 한 무대에서 만나는 순간, 교과서의 문장은 살아 움직이는 배움이 된다. 올가을, 부산은 교육의 해답을 ‘참여’에서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