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권오준 기자】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3시간 30분 남짓 달려 도착한 서해 최북단 소청도 답동포구. 푸른 바다 너머로 이웃 섬인 대청도의 웅장한 능선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직선거리로는 불과 수 킬로미터. 그러나 하얗게 부서지는 너울성 파도가 포구를 집어삼킬 듯 일렁이자, 그 짧은 뱃길은 거대한 단절의 벽으로 돌변했다.
“저기 대청도 면사무소나 보건지소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배가 끊깁니다. 안개가 끼어도 못 가고, 바람이 불어도 못 가지요. 바로 코앞에 두고도 오도 가도 못 하는 게 우리 소청도 200여 주민의 일상입니다.”
소청도에서 평생을 어업에 종사해 온 김 모(71) 씨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은 대청도(주민 약 1,200명)와 소청도(주민 약 200명)로 나뉘어 있다.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중·고등학교, 주요 보건 시설 등 대부분의 행정·생활 인프라는 본도인 대청도에 집중돼 있다.
소청도 주민들에게 가장 가혹한 것은 단연 ‘의료 공백’이다. 소청도에는 공중보건의가 배치된 작은 보건진료소뿐이어서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전문적인 검진·치료가 필요한 경우 속수무책이다. 최근 백령도 등에 전문 치과·의료 시설이 들어서는 등 서해 5도 의료 개선 바람이 불고 있지만, 정작 배가 뜨지 못하면 소청도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기상 악화로 해경 경비정이나 닥터헬기마저 뜨지 못하는 날, 환자와 가족들은 밤새 가슴을 졸이며 풍랑이 잦아들기만을 기도해야 한다. 주민 박 모(68·여) 씨는 “혈압약이나 당뇨약이 떨어져도 바다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며 “새벽에 갑자기 복통이나 뇌출혈 증세라도 오면 그 길로 끝이라는 공포를 안고 산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이 입을 모아 요구하는 해법은 명확했다. 바로 ‘대청도~소청도를 잇는 연도교 건설’이다.
두 섬 사이에 연도교가 놓이면 기상 이변 속에서도 24시간 육상 통행이 가능해진다. 소청도 주민들이 차량으로 대청도의 병·의원과 행정기관을 수시로 이용할 수 있고,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의 종합 의료망과 추진 중인 백령공항 등 광역 교통망까지 단번에 연결될 수 있다.
연도교의 필요성은 단순한 이동 편의를 넘어선다. ▲첫째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 생명권’의 확보이며,▲둘째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직면한 서해 5도 접경지역의 ‘정주여건 개선’이다. ▲셋째는 대청도의 천혜 비경(서풍받이·모래사막)과 소청도의 천연기념물 분바위, 등대를 잇는 해양 생태 관광벨트가 구축돼 침체된 도서 경제에 강력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등에서 ‘낮은 인구수와 경제성(B/C)’이라는 벽에 부딪혀 번번이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주민들과 지역 정계는 서해 최북단 NLL(북방한계선) 접경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력히 지적한다. 섬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고 거주하는 것 자체가 국토 방위와 해양 영토 수호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면의 한 주민대표는 “경제성 논리로만 따진다면 서해 낙도 주민들은 아파도 참고 갇혀 살라는 말이냐”며 “정부와 인천시가 서해 5도 특별지원 정책에 대청~소청 연도교 건설을 최우선 국책 과제로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연도교 개설을 향한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6·3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변영헌 전 후보는 대청·소청도 주민들의 고립 해소와 정주여건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현재까지도 대청~소청 연도교 추진 방안 마련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 질 무렵 소청도 등대 너머로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바닷길이 끊긴 섬 마을의 불빛들은 외롭게 깜빡이고 있었다. 200여 소청도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특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언제든 병원에 가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그 일상을 이어줄 다리를 놓는 일, 이제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 있게 답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