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일보 김은기 기자】사회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더욱 단단히 붙잡아야 할 원칙이 있다. 법치주의다. 법은 순간의 감정이나 여론의 흐름에 흔들려서는 안 되며, 오직 법률과 증거, 적법절차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은 피의자의 유무죄를 확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수사와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강제처분이며, 그 요건은 법률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피의자의 연령과 건강 상태, 이미 확보된 증거의 정도,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등 객관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 형사법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는 법률적 판단보다 여론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종종 제기된다. 특정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비판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구속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법원이 사회적 분위기나 여론의 압력에 따라 판단한다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역할은 사회적 분노를 해소하는 데 있지 않다.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법률에 따라 공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사법부 본연의 임무다. 구속은 상징적 책임을 지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때에만 신중하게 행사돼야 하는 법적 조치다. 이 원칙이 흔들린다면 구속은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물론 사회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누구도 법 앞에서 예외가 될 수 없으며, 혐의가 있다면 공정한 재판을 통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정의다. 반대로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면 무죄를 확인받는 것 또한 법이 보장하는 정의의 한 모습이다. 이 모든 과정은 여론이 아닌 법정에서, 감정이 아닌 증거와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거창한 선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작은 절차 하나를 얼마나 충실히 지키는가에서 시작된다. 사법부가 어떤 외부 압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법과 증거에 따라 독립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때, 우리 사회는 갈등을 넘어 정의와 신뢰가 살아 있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법은 여론을 따라 움직이는 저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정의의 저울이어야 한다. 그 저울이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국민은 사법을 신뢰하고, 법치주의는 더욱 굳건히 설 수 있다.



